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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감동사연_1조 유물 신라의 황금 보검

by 감동수집 2025. 4. 11.

'신라의 황금 보검' 이미지
'신라의 황금 보검' 이미지

 

경주에서 시작된 나의 역사적 각성

 

저는 에밀리 마르탱입니다. 프랑스 출신으로, 고대 유물 보존과 복원 전문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여러 유적지를 다녀보았지만, 한반도는 제게 비교적 낯선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경주’라는 도시에 관한 국제 학술지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황금 보검이라는 전대미문의 유물이 발견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그 기사 하나로 제 인생이 바뀌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단순한 출장이라 생각하며 도착한 경주는, 상상 이상으로 고요하고도 장엄한 유산의 도시였습니다. 천년 고도라는 이름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첨성대와 황남대총을 둘러보며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운명처럼 마주한 황금 보검. 그것은 단지 하나의 유물이 아닌, 문명의 교차점이자 예술의 정점이었습니다. 저는 그 보검 앞에서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유럽과 한반도, 두 문명이 연결된 증거를 제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낯선 땅에서, 저의 고고학적 자존심은 새로운 겸허함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경주는 그렇게, 제 학문과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황금 보검, 그 찬란한 연결의 증거

 

제가 처음 계림로 14호 고분을 마주했을 때, 이토록 소박한 무덤에서 세계적 유물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말 장식부터 보석 세공품, 무엇보다도 정교하게 조각된 황금 보검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 보검에 박힌 석류석, 로돌라이트는 제가 프랑스에서 다루었던 로마 유물과 유사한 기법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즉시 그것이 단순한 아시아의 유물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유럽에서도 단 세 점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보검이 왜, 어떻게, 신라에 있었는가? 제 마음속 질문은 갈수록 커졌습니다. 표면에 세공된 태극 문양, 그 안의 꽃봉오리 같은 장식들은 그리스-로마 양식과 켈트풍 문양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 누금 세공 기술은 저도 지금껏 보지 못한 수준의 정교함을 지녔습니다.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 보검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유럽과 신라를 이어준 문명의 증거이자, 당시 신라의 국제적 위치를 보여주는 역사적 유산이라고요. 그날 밤 저는 고요한 경주에서 별빛을 보며, 역사가 말없이 전하는 진실을 처음으로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신라의 빛은 나의 미래를 밝혔다

 

경주에서의 나날은 제게 단순한 고고학 연구를 넘어서, 문화에 대한 사랑과 이해의 깊이를 더해주었습니다. 황금 보검은 단지 하나의 유물이 아닌, 문화가 국경을 넘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였습니다. 유럽에서 출발한 기술과 예술이 이 작은 한반도의 왕국, 신라까지 도달했다는 사실은 저를 경외심에 휩싸이게 했습니다. 저는 프랑스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대신 경주에 남아, 신라 유물 보존을 위한 국제 협력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이제 저는 ‘한국 문화의 해외 전파’를 위한 다리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신라는 저를 단순한 학자에서, 한국과 세계를 잇는 가교로 바꿔주었습니다. 제 이름, 에밀리 마르탱은 이 땅의 역사와 함께 다시 태어났습니다. 경주의 황금 보검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이제, 제가 전 세계에 한국의 찬란함을 알리는 등불이 되었습니다. 역사는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고 살아내야 할 ‘살아 있는 이야기’임을 저는 이곳에서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