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 익숙해지는 마음
안녕하세요. 저는 안젤리카 콜린스입니다. 미국 출신의 고고학자이며, 동양 고대 건축 복원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전 세계 유적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해왔으며, 특히 한국의 불교 건축에 깊은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그 관심의 끝에는 늘 ‘황룡사 구층목탑’이 있었습니다. 다만 책과 기록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 전설적인 건축물은 제게 늘 신비로움을 자아냈고, 마침내 직접 그 터를 밟고, 그 흔적을 조사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경주의 공기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하게 했습니다. 한국어도 서툴고 문화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땅의 역사와 호흡하며 점점 익숙해져 갔습니다. 황룡사의 터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뭔가 특별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고요한 땅속에 잠든 천년의 흔적은 제 마음을 사로잡았고, 저는 이 거대한 유산을 다시 세우는 일에 모든 열정을 바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이 단순한 복원일 뿐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에겐 그것이 단순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 위대한 나라, 신라의 정신과 혼을 다시 일으키는 일이었습니다.
황룡사 터에서 마주한 진짜 한국
발굴은 단순히 땅을 파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경주의 긴 겨울과 뜨거운 여름을 지나며 한국의 역사와 사람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황룡사 터에서 처음 발견한 심초석의 흔적을 만졌을 때, 그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천년 전의 장인과 제가 손을 맞잡는 기분이었습니다. 특히 구층목탑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저는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제 출신 장인이 신라의 탑을 세우며 조국을 잃게 될 것을 걱정해 미쳐버렸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탑이 완공된 후,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다는 사실. 이것이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실제 역사의 일면이라는 사실에 전율이 흘렀습니다. 또한 1960년대 도굴 사건과 복원 시도의 역사까지 알게 되면서, 저는 한국인들이 이 유산을 얼마나 아끼고 또 얼마나 많은 갈등 속에서 보존해 왔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역사와 신념의 싸움이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 속에서 단지 한 외국인 학자가 아닌, 황룡사의 후손이자 지킴이가 된 듯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이 나라는 나를 받아주었고, 나는 이 나라의 자랑을 세상에 다시 보여줄 사명을 안게 되었습니다.
다시 깨어나는 천년의 탑
복원은 아직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언젠가 이 땅 위에 다시 서게 될 황룡사 구층목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신라의 자존심이자, 한국인들의 혼과 정신을 상징하는 탑이 될 것입니다.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외로운 외국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 심장 한가운데 ‘신라’라는 이름이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천년의 흔적을 품은 이 땅에서, 저는 사람들과 함께 그 시간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황룡사의 이야기는 단지 과거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재 진행형이며, 한국인의 뿌리와 정신을 말없이 전하고 있는 유산입니다. 언젠가 이곳을 방문하실 기회가 생긴다면, 꼭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시길 바랍니다. 역사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고, 느껴지며, 미래로 이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위대한 유산의 복원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